YEF Korea      YEF International
YEF News

종교개혁의 배경과 준비(3) '스콜라 신학의 붕괴'와 '신비주의'

May 01, 2015 09:58 PM EDT

image

'종교개혁'(Reformation)은 교회 역사의 발전 과정에 비추어 볼 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종교개혁을 가져올 수밖에 없게 했던 역사적 요인들로는 '교황청의 부패와 타락', '국가주의'와 '인문주의'의 흥기, '스콜라 신학의 붕괴', 중세기 말의 '신비주의' 및 '종교적 경건'을 들 수 있는데, 여기서는 '스콜라 신학의 붕괴'와 '신비주의' 등에 대해서 살펴본다. 

"스콜라 신학의 붕괴"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완성된 스콜라 신학은 중세 교회의 권위를 확고히 해 주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토마스의 신학이 둔스 스콧투스에 의해 비판을 받고 윌리암 옥캄에 의해 공격을 받아 붕괴되자 중세 교회는 그 권위를 지원해 줄 사상적 기반을 잃게 되었다.

토마스는 모든 진리가 이성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상승적 체계에 의해 조화 있게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고차적인 진리(삼위일체 등)는 '계시'에 의해 얻을 수 있고 고차적인 덕은 신적 '은혜'에 의해 소유될 수 있으나 인간의 자연성(nature)은 우리를 은혜(grace)의 영역으로 인도한다고 했다. 즉 은혜는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오히려 완성하며 신앙은 이성을 파괴하지 않고 오히려 이성의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저 너머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고 했다. 토마스는 또한 실재론적 입장에 서서 개체의 존재는 우주적 실재에 근거하고 있으므로 교회나 국가는 많은 개체들을 모아놓은 집합체가 아니라 우주적 실재에 상응하는 존재라고 보았다. 

윌리암 옥캄은 토마스의 스콜라 신학에 정면으로 도전하여 진리는 이성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신앙으로만 이해될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또한 우주적 실재를 부인하면서 참으로 실존하는 것은 개체뿐이라는 유명론을 내세웠다. 국가와 교회는 하나의 우주적 유기체가 아니라 참 실재인 개체들(즉, 시민들이나 신도들)로 구성된 집합체에 불과하다고 했다. 루터가 비록 옥캄의 개인주의적 유명론 철학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어도 교회와 교황의 권위를 무시하면서 권위의 소재는 오직 개인의 신앙과 성서에 있다고 주장했던 옥캄의 신학파 운동(via moderna)에 많은 감화를 받았다. 

"신비주의 및 종교적 경건"

중세 교회가 지나치게 제도화되고 교회 생활이 형식화되어 가는 동안 교회의 의식과 예전을 통하는 대신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연합을 추구하며 신앙 생활의 활력을 되찾으려는 신비주의 운동 내지는 경건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독일 도미니칸 수사였던 마이스터 엑하르트(Meister Echart, 1260~1327)는 극단적인 신비주의를 발전시켰으니 종교의 본질은 모든 감각적이고 구체적인 것에서 '떠나서' (abgeschieden,detach) '알 수 없는 구름' 속으로 빠지는 것이라고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사도 바울이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라고 했던 것처럼 많은 신앙 위인들이 사랑을 예찬했지만 나는 은둔과 초연(Abgeschiedenheit, detachment)을 더 높이고 싶다. 사랑은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지만 초연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나를 사랑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겸손을 다른 모든 덕보다 높이 예찬했지만 나는 초연을 무엇보다 더 높이고 싶다. 초연함을 겸하지 못한 겸손은 있을 수 있으나 겸손을 겸하지 않는 초연함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 참된 초연이란 우리의 영혼이 이 세상의 어떤 변화나 사랑, 고통, 명예, 불명예, 수치 등을 당면할지라도 산과 같이 요지부동 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 초연함은 영혼을 정화시키고 양심을 깨끗게 하며 마음에 불을 켜고 영혼의 잠을 깨우며 욕망을 억제 시키며 하나님을 알게 하며 세상이 모두 사라지게 하여 하나님과 연합하게 만든다. 이와 같은 완전으로 우리를 데려다 줄 수 있는 가장 빠른 말(馬)은 고난이요, 이와 같은 완전을 이룩할 수 있는 가장 확고한 기반은 겸손이다. 초연함에 도달하기를 원하는 자는 완전한 겸손을 가지고 추구할 것이다. 겸손의 길을 통해서 하나님과 가장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초연에 대하여. 

엑하르트의 신비주의에는 범신론적 요소가 있어 당시와 후대에 정죄를 받아왔으나 루터를 비롯한 종교 개혁자들에게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초연을 강조한 엑하르트의 사상은 결국 교회의 의식과 성례의 필요성을 약화시켰다.

보다 온건한 형태의 신비주의를 발전시킨 사람이 라인 계곡의 "하나님의 친우회"(The Friends of God)에 속했던 타울러(John Tauler, 1300~1361)였다. 타울러를 비롯한 "하나님의 친우회" 회원들은 성례를 통하지 않고 직접 하나님에게 접근하는 명상의 방법을 발전시켰다. 이들은 사랑을 신앙의 본질로 보았고 하나님께서 보상하시는 것도 사랑뿐이라고 했다. 

타울러와 "하나님의 친우회" 회원들이 적극적인 개혁운동을 일으키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보상하시는 것은 선행이나 공로가 아니라 사랑뿐이며 하나님의 임재가 성례를 통하는 것보다는 순결한 마음에 이루어짐을 강조함으로 중세 교회제도를 약화시켰고 결국 종교개혁으로의 길을 준비해 놓았다. 특히 루터는 타울러의 설교를 즐겨 읽었으며 그에게서 많은 감화를 받았다. 

14세기 말엽 화란에서는 "공동생활 형제단"(The Brethren of Common Life)이라는 경건운동 단체가 일어났다. 이 운동의 가장 저명한 저자가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à Kempis, 1380-1471)였는데 그는 그의 저서 「그리스도를 본받아」(The Imitation of Christ) 에서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면서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을 강조했다. 신학보다는 경건을, 사색보다는 예배를 강조했으며 형식보다는 내적 체험을 강조했다. 

"공동생활 형제단"에 속했던 또 하나의 대표적 지도자는 베쎌 간스포르트(Wessel Gansfort, 1420~1489)였다. 그는 교회의 의식과 성례의 무용성을 지적했으며 사죄와 구원을 얻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과 하나님과의 사랑의 교제뿐이라고 했다. 베인톤 교수가 지적한대로 "베쎌은 에라스무스와 루터의 선구자였다"고 할 수 있다.

"신비주의 및 종교적 경건운동"이 바로 종교개혁은 아니었으며 종교개혁이 바로 이와 같은 운동들로부터 기원했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운동들은 종교개혁의 기운을 조성시켰으며 종교개혁을 격려했고 종교개혁의 발전 과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