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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의 자존감과 자신감

Jun 14, 2015 11:37 PM EDT

바울

신앙에는 두 가지 색깔이 있다. 어두운 색깔과 밝은 색깔이다. 나는 죄인 중의 괴수이고 나는 망할 자라는 '좌절감'과 '절망감'을 지니는 것도 신앙이고, 나는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은혜와 사랑을 입어 하나님의 자녀와 하나님의 종이 되었다는 "자존감"과 "자신감"을 지니는 것도 신앙이다. 성 어거스틴과 예일대학교의 펠리칸 박사는 기독교 신앙에는 "비관주의"와 "낙관주의"가 공존하는데,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면 "비관주의자"가 되고 하늘과 하나님을 바라보면 "낙관주의자"가 된다고 지적했다. 내가 범한 죄악을 바라보고 죄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우리는 '좌절'과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의 모든 죄악을 사하시고 나에게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은혜와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체험할 때, 우리는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행복한 사람이 되고 "자존감"과 자신감"을 지닌 낙천주의자가 된다. 그래서 성 어거스틴은 기독교의 신앙을 "비관주의적 낙관주의"라고 분명하게 정의한 바 있다.

첫째로, 다윗 왕에 대한 이야기이다. 다윗은 자기가 범한 간음죄와 살인죄를 바라보고 죄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좌절'과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죄를 이렇게 지적하셨다.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뇨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죽이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우리아의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은 즉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삼하 12:9, 10). 결국 다윗은 자기의 죄를 고백하면서 '슬픔'과 '좌절감'과 '절망감'에 사로잡혀 눈물을 흘리면서 울고 또 울었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삼하 12:13). 자지도 먹지도 못하고 탄식하면서 울고 또 울었다.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시 6:6).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시 42:3).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회개의 기도를 들으시고 자기에게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은혜와 사랑의 손길을 펴시는 것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리는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결국 "자존감"과 "자신감"을 지니고 달려가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종이 되었다. 그의 가슴과 입에서는 처절한 죄 고백과 함께 죄 사함에 대한 감사와 찬송이 흘러 나오고 또 흘러나왔다.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시 32:5).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찌어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시 103:2-5).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영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시 145:1,2). 다윗은 감사와 찬송이 넘치는 행복한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다윗은 죄 사함을 받아 새로운 존재가 된 자기 자신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서 자기를 두려울 정도로 놀라울 정도로 멋지고 대단한 존재로 지어주신 것을 발견하고 대단한 "자존감"을 지니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렸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시 139:14). 여기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를 영어성경은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I am fearfully and wonderfully made." 다윗과 같이, 자기의 모습을 두려울 정도로 놀라울 정도로 멋지고 대단하게 지어졌음을 바라보면서 자기만큼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은혜와 사랑과 복을 많이 받은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을 발견하면, 대단한 "자존감"을 지닌 소위 "왕자병"에 걸릴 수밖에 없게 된다. 다윗은 또한 이렇게 고백했다.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내가 세려고 할찌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오히려 주와 함께 있나이다"(시 139:17, 18).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일생을 세밀하게 간섭하시며 자기에게 베푸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은혜와 사랑과 복의 조목들을 세어보려고 했는데, 그 수가 모래알보다 더 많아서 셀 수 없다고 고백하였다.

다윗은 또한 자기의 목자 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 덕분에,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지니고 어디든지 달려가면서 살았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4). 다윗은 이렇게 고백하기도 하였다.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음부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내가 환난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시 18:4-6). 다윗은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감"을 지니고 한평생을 당당하게 뚫고 나아가면서 멋지게 살았다.

둘째로, 사도 요한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도 요한은 자기를 특별한 존재로 인식하며 "자존감"과 "자신감"을 지니고 살았다. 사도 요한은 열 두 제자들 중에서 안드레와 함께 제일 먼저 예수님께로 와서 제자가 되었다(요 1:40). 사도 요한은 열 두 사도들 중에서 제일 마지막까지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의 주님을 섬기고 증거하면서 살다가 죽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제자가 된 후 항상 예수님 곁에 있으면서 예수님을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면서 살았다고 고백하였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요일 1:1). 변화산에 올라갈 때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도, 예수님께서는 사도 요한과 두 제자를 데리고 가서 기도하셨다. 결국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을 가장 상세하게 많이 듣고 보고 기록한 사람은 사도 요한이었다. "이 일을 증거하고 이 일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거가 참 인줄 아노라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요 21:24, 25).

사도 요한은 자주 예수님의 품에 의지하며 안기기도 하였다. 최후의 만찬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면서 자기의 이름을 밝히는 대신 "예수님의 사랑하는 자"라는 말을 썼다.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의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시몬 베드로가 머릿짓을 하여 말하되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 한대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오니이까"(요13:23-25). 사도 요한은 십자가 아래 모친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와 함께 있었는데 그 때에도 자기의 이름을 밝히는 대신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기록하였다.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요 19:26, 27). 예수님께서 자기 어머니를 사도 요한에게 맡기실 정도로 사도 요한을 매우 믿고 사랑하셨음을 볼 수 있다. 사도 요한은 디베랴 바다가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하면서도 자기를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기록했다.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요 21:7).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여 주를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러라"(요 21:20).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를 제일 사랑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사랑을 받은 사람은 "자존감"과 "자신감"을 지니게 된다.

사도 요한의 자기 확신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 갇혔을 때 부활의 주님께서 여러 번 나타나서 마지막 계시의 말씀을 자기에게 맡겨주셨고 천국의 영광스런 모습까지 자기에게 보여주시자, 사도 요한은 매우 크고도 깊은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격하며 자신을 주체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사도 요한은 자신이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극진하게 받은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확신했을 것이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입을 열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예수님은 사랑이시라"라고 중얼거리면서 행복하게 살다가 행복하게 죽었다. 사도 요한은 밧모 섬에 갇힌 죄수가 되었지만 죽음도 고난도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주님과 하늘을 바라보면서 극도의 "자존감"과 "자신감"을 지니고 행복하게 살다가 행복하게 죽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계시를 받아서 쓰면서 주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사도 요한은 이렇게 기도하고 축원하면서 가장 행복한 삶을 마감했다. 아니 영원한 행복의 삶으로 이어졌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찌어다 아멘"(계 22:20,21). 

셋째로, 사도 바울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도 바울은 처절한 '좌절감'과 '절망감'을 지니면서 동시에 대단한 "자존감"과 "자신감"을 지니고 산, 대표적인 사람일 것이다. 사도 바울은 스데반을 돌로 쳐서 죽이고 예수님과 교회를 핍박하고 훼방하던 죄인 중의 죄인임을 고백하면서, 그리고 자기 속에 자리잡고 있는 죄악의 세력들을 바라보면서, 평생 처절한 회개와 참회의 고백을 하면서 처절한 '좌절감'과 '절망감'을 지니고 살았다. "내가 이 도를 핍박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행 22:4, 5).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3, 15).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 7:24, 25). 사도 바울은 평생 회개와 참회의 눈물을 흘리면서 평생 '좌절감'과 '절망감'을 지니고 어둡게 살았다.

그러나 동시에 사도 바울은 죄 사함의 은혜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된 은혜와 사랑을 생각하면서 평생 "감사"와 "찬양"의 고백을 하며 대단한 "자존감"과 "자신감"을 지니고 기쁘고 행복하게 살았다.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3, 15).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롬 5:20, 21).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우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우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롬 6:17).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롬 1: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는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빌 1:1). 사도 바울은 자기와 같은 저주받아 마땅한 죄인이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 되고 사도가 되었다는 대단한 "자존감"과 함께,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대단한 "자신감"을 지니고 한평생을 만족하고 행복하게 살았다고 고백했다.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1-13).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사도 바울에게는 두려움이라는 단어가 아무 상관이 없었다. 사도 바울은 대단한 "자신감"을 지니고 모든 환난과 죽음의 세력과 대항해서 싸워서 이겼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3-37).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 15:55-57). 이렇듯 사도 바울은 처절한 '좌절감'과 '절망감'을 지니고 살면서 동시에 대단한 "자존감"과 "자신감"을 지니고 살았다.

우리 죄인들이 우리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죄악의 요소들을 바라보면서 극도의 '좌절감'과 '절망감'을 지니고 울면서 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선지자 이사야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라고 부르짖었고, 성 어거스틴은 "나는 망할 자입니다"라고 거듭해서 고백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들의 모든 죄악을 사하시고 우리들을 하나님의 자녀들과 일꾼들로 삼아주신,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은혜와 사랑의 손길을 바라보면서 감사와 찬양을 올리면서 "자존감"과 "자신감"을 지니고 사랑의 눈물을 흘리면서 행복하게 사는 것도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우리 죄인들이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리면서 "자존감"과 "자신감"을 지니고 사랑의 눈물을 흘리면서 행복하게 살 수밖에 없는 근거가 되는 성경 말씀이 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선지자 이사야에게 하신 말씀이고 우리 모두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사 43:1-3). 선지자 이사야에게 하신 말씀이고 우리 모두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네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눅 7:48, 50). 죄인인 한 여인에게 하신 말씀이고 죄를 고백하는 우리 모두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마 10:30-32).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고 주님을 따르는 우리 모두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 17:20).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고 주님을 따르는 우리 모두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20).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고 주님을 따르는 우리 모두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신앙인들은 소위 "왕자병"에 걸릴 필요가 있다. 자기의 존재를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와 사랑을 입은 특별한 존재라고 믿는 "자존감"을 지니게 하는 병이기 때문이다. 물론 죄인 중의 괴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 죄인을 특별하게 사랑하시며 이 죄인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푸신다. 무엇보다 주님의 보배로운 피 때문에 그리고 순교자들이 흘린 피 때문에 부족한 죄인에게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은혜와 사랑과 복을 한 없이 베푸신다. 성부 성자 성량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특별한 존재들이다. 우리들은 모두 하나님의 자녀들과 일꾼들이 되었다는 "자존감"을 지니고 당당하게 살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아무 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알파와 오메가 되시는 우리 주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우리들과 항상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들이 만왕의 왕이 되시는 우리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 17:20). 우리는 이 "자신감"을 지니고 "사망아 네까짓 것이 무엇이냐?"라고 호령하면서 살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