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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자와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3)

Jan 11, 2016 09:00 AM EST

Jesus

누가복음 19장에 나오는 세리장 삭개오에게 임한 은혜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보자. 삭개오는 예수님께서 자기와 같은 죄인들을 부르러 오셨다는 말씀을 전해 듣고 혹시 자기도 예수님께서 부르실 수는 없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뽕나무에 올라가서 예수님을 멀리서나마 바라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수 많은 군중 속으로 걸어가시던 예수님께서 자기에게로 가까이 오셔서 자기를 바라보시면서 자기의 이름을 부르신다. 그리고 오늘 자기 집에 유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눅19:5). 삭개오는 너무도 놀랐을 것이다. "정말 맞구나!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고 나 같은 죄인을 부르러 오셨구나! 지금 나를 부르고 계시는구나!" 삭개오는 너무 놀라면서 자기의 죄를 고백하기 시작했다. "주여 보시옵소서 그 동안 남의 물건과 돈을 너무 많이 빼앗았습니다. 부정 부패를 너무 많이 저질렀습니다. 내가 이제 남의 것을 토색한 것을 4배나 갚겠습니다." 이렇게 고백했을 때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임했다. 주님께서 이렇게 선언하셨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눅19:9). 이처럼 멸시와 천대와 증오를 받은 죄인에게 참으로 놀라운 은혜가 임한 것이다.

누가복음 8장에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임한 은혜가 기록되어 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 들렸던 죄인 중의 죄인이었다. 스코틀랜드의 유명한 신학자 맥클라렌은 막달라 마리아가 일곱 가지 대표적인 죄악의 늪에 빠졌던 도저히 소생할 가능성이 없었던 죄인 중의 죄인이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런 막달라 마리아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께서 막달라 마리아를 만나주신 것이었다. 그녀를 저주하시고 심판하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그녀를 일곱 가지 귀신에게서 건져주시기 위해서였다. 가까이 하기만 해도 죄가 묻어날 것같이 느껴지는 더럽고 혐오스러운 죄인에게 주님께서 가까이 오셔서 그녀의 죄를 사하시고 그녀를 구원하신 것이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막달라 마리아로 하여금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을 가까이에서 보살피는 봉사자로 삼아주셨다. "이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반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 쌔 열 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또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또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더라"(눅8:1-3). 너무너무 놀라운 일이었다. 참으로 이상하고 놀라운 일이었다. 결국 막달라 마리아는 눈물의 사람이 되었다. 지난 날 자기가 저지른 수 많은 종류의 죄악들을 생각하면서 수 많은 죄악의 늪에 빠졌던 자기 자신을 생각하면서 울고 또 울고 또 우는 눈물의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자기와 같은 죄인을 사랑하시되 너무너무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울고 또 울고 또 우는 눈물의 사람이 되었다.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가서도 울고 또 울었다. 부활의 주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들에게 먼저 나타나시지 않고 일곱 귀신 들렸던 자기에게 먼저 나타나신 사실을 생각하며 그 놀라운 사랑에 감격하여 울고 또 울고 또 우는 눈물의 사람이 되었다. 이와 같은 눈물과 사랑의 은혜가 의인이요 건강한 자들에게는 나타나지 않았다. 오직 소생할 가능성이 전혀 없었던 죄인들에게만 나타났던 것이다.

다음으로 간음 현장에서 잡힌 여자와 포악한 로마 군인들과 강도 한 사람에게 임한 은혜에 대한 이야기를 보자.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는 성경의 가르침대로 돌에 맞아 죽어 마땅한 죄인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은혜가 그에게 임했다. 그가 한 것은 자기가 죄인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뿐이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던 포악한 로마 군인들은 저주와 심판을 받아 마땅한 죄인들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주님께서 저들을 위해서 기도하시므로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은혜가 나타났다. 예수님과 함께 옆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가던 강도들은 자기들의 죄 값을 치르면서 저주와 심판을 받아 마땅한 죄인들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강도 한 사람에게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은혜가 나타났다. 그가 한 말은 자기가 강도 짓을 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예수여" 라고 예수님을 부른 것뿐이었다. 진리와 공의의 관점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모순되는 일들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도저히 용서 받을 수 없는 소망 없는 죄인들에게 너무도 크신 은혜와 사랑을 베푸셨다. 

배신자 베드로와 핍박자 사울에게 임한 은혜를 보자.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다음에도 승천하신 다음에도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죄인들에게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손길을 펴셨다. 배신자 베드로에게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손길을 펴셨고, 핍박자 사울에게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손길을 펴셨다. 배신자 베드로와 핍박자 사울을 사도 중의 사도들로 삼으셨고 순교자 중의 순교자들로 삼으셨다. 결국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은 후세의 모든 악독한 죄인들의 위로가 되었고 소망이 되었고 모델이 되었다. 사도 바울의 다음과 같은 고백은 수많은 후세의 악독한 죄인들이 붙잡고 고백할 수 있는 보석과 같은 소망과 은혜의 말씀이 되었다. "내가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도다"(고전4:13).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롬7:24). "죄인 중의 내가 괴수니라"(딤전1:15). 이와 같은 사도 바울의 보석과 같은 소망과 은혜의 고백들을 붙잡고 울면서 주님 품으로 돌아온 사람들 중에는 육체의 정욕과 이단에 빠졌던 죄인 어거스틴이 있었다. 불교와 선도에 빠졌던 죄인 길선주 도사도 있었다. 마펫 선교사를 돌로 쳤고 장대현 교회당을 때려 부셨던 죄인 이기풍 깡패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