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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여름수련회 성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나니"

Aug 25, 2019 02:53 PM E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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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8일 주일, 2019년 여름수련회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성료되었다. 3박 4일간의 일정과 갈라디아서 강해를 통해서, 구원의 복음과 그리스도의 속죄의 길을 따라가는 삶에 대해 묵상하는 가운데 큰 은혜와 영적 자유가 임하는 시간이었다.

마지막 날 일정은 경배와 찬양, 폐회 예배, 수련회 기념 영상으로 마무리되었다. 폐회 예배에서는 갈라디아서 6장 14-18절을 본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나니"라는 제목의 설교 말씀이 전해졌다.

"나를 살리신 보혈의 십자가"

주님은 늘 우리를 사랑하시고 품어주셔도 우리는 부인하고 배반하고 살아갈 때가 많다. 그러나 갈라디아서 말씀을 통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사랑으로 우리를 기다리시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힘을 얻고 다시 주님께 돌아갈 수 있다.

좋은 것이 있으면 자랑하고 싶어진다. 이 편지를 쓰는 바울도 자랑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바울은 인간적으로 남들이 부러워할 모든 조건을 갖춘 자였다. 그러나 그는 최고의 지식과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었던 과거, 로마의 시민권까지 전부 배설물로 버렸다.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가장 고상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십자가를 자랑할 때 임한 성령의 은혜"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하노라고 한다. 주님께서 저주받으심으로 우리의 저주를 풀어주셨다. 속량은 값을 다 치르고 사서 자유케 하는 것이다. 죄의 종인 우리를 주님이 사셔서 자유케 하셨다. 그 값은 죄없는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과 피 값이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희생을 보배로운 피라고 한다. 보혈의 십자가를 바라보라.

바울은 나를 살리신 그 십자가가 너무도 귀하고 자랑스러워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이 작아보이고 가졌던 자랑이 다 부끄러운 것이 되어버렸다. 십자가는 유대인들에게는 저주스러운 처형틀이다. 그러나 바울은 그것을 자랑한다. 주님께서 자신 대신 참혹한 고난을 받으셨기 때문이다. 그 십자가가 자신을 살렸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자"

마치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는 것처럼 우리도 삶 속에서 십자가를 늘 자랑하자. 그러할 때 우리에게 임할 수 있는 저주가 떠나간다. 하나님 사랑을 알게 되면 은혜를 받는다. 은혜를 받는다는 것은 저주가 풀리는 것이다. 십자가를 드러내고 자랑할 때, 그 십자가 아래 내가 있을 때, 우리 인생의 저주가 풀린다. 그 좋은 것을 왜 숨기고, 감추고, 부끄러워하겠는가? 십자가는 사랑이다. 죄인을 위한 낮춤과 희생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러하신 것처럼 우리가 파송되는 모든 현장에서 십자가를 드러내자.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한다고 했다. 크고 화려한 도시 로마에서 사형틀인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이 부끄러울 수도 있다. 그런데 바울은 십자가만이 복음의 능력임을 알았다. 그들의 영혼이 이 복음을 간절히 찾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결코 다른 것으로 바뀌지 않는다. 우리 자신 또한 지독하게 바뀌지 않는 모습이 있다. 그러나 복음은 사람을 바꿀 수 있다. 구원은 사람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를 위해 생명까지 주신 사랑, 변치 않고 포기치 않는 그 사랑으로 사람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담대히 말한다. 복음은 모든 영혼이 간절하고 절실하게 찾고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나서 이전의 내가 죽고 새롭게 되었다고 말한다.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는, 이 찬양이 바로 우리의 간증이다. 바울은 늘 할례나 무할례가 아닌, 새로 지으심을 받았다는 본질을 붙들고자 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 바뀌는 것이 중요하다. 오직 남는 것은 예수의 사랑이다. 그것으로 내가 변화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바울은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는 이것을 규례(Canon)라고 하며, 그 삶을 살아가는 자를 축복했다.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녔노라"

흔적(stigma)은 소유자가 소유물인 가축에 새기는 표식, 낙인이다. 바울은 자신에게도 자신이 예수의 것임을 증명하는 수많은 상처들이 있다고 말한다. 복음을 따라 살며 예수를 전하며 받은 수많은 상처들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받은 은혜와 기쁨, 자유의 복음은 그냥 온 것이 아니다. 수많은 고난과 어려움, 눈물 겨운 핍박 끝에 우리에게 다다르게 된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1장에서 받은 고난을 기록하며, 이 복음이 어떻게 그들에게 전해진 것이었는지를 눈물로 호소한다. 복음은 참으로 값진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깨달은 복음을 다시 떠나 다른 방식으로 살며 다시 종이 되어 살아가며 괴롭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에게 이 상처는 자신이 복음의 일꾼임을 증거하는 영광의 상처였다. 수고와 희생을 무릅쓰고 선교를 하시는 분들 안에는 뜨거운 헌신으로 새겨진 흔적이 있다. 우리가 인생을 끝낼 때 무엇이 남는가? 부귀영화와 누렸던 세상의 것들은 남지 않는다. 주를 위해 헌신한 것, 누군가를 사랑하여 섬긴 것, 영혼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했던 것만이 남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물질적인 축복도 주실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허무한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으로 남아지려면 '그것이 주의 뜻을 위해 어떻게 쓰였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도마는 예수님의 못 자국을 만져본다. 그 상처는 사랑의 상처였다. 바울도 그 사랑을 받은 자로서, 주님을 위해서 열심히 살았다. 주를 위하여 고난과 역경을 이겨냈다. 수제자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하기까지 헌신했다.

주께서 나를 위해서 그렇게 사셨음을 알았기 때문에, 그것을 진지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사도들은 열심히 그 길을 따라 살아갔던 것이다. 우리의 마음에 남는 것은 결국 이 은혜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늘 우리의 마음 속에 충만하길 기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