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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I)

Jan 27, 2020 09:59 PM 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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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6: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사도 바울은 원칙적이고 정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도가 로마서 8장에서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는 인간의 슬픔, 한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게 인간입니다. 뭘 빌어야 할지 뭘 기도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주님께서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익히 알고 있는 주기도문이지만 우리가 깊이 생각해보고, 한 절마다 뜻을 되새기길 원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여기서 느껴지는 것은, 주님께서는 실로 하나님과 가까우셨다는 것입니다. 신학은 철학에 근본을 두고 있는 학문입니다.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우리의 이성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그 하나님이 누구신가?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주기도문은 분명한 기도의 대상이 있습니다. 기도를 받으시는 분이 분명히 계시다는 것, 놀라운 가르침입니다. 이 땅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향방 없는 기도, 듣는 분이 없는 기도를 하는가? 그러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전능한 분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자식이 간절한 소망을 말하면, 지나가듯이 이야기해도 부모는 그 말을 절대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다 들으십니다. 지나가듯 말해도 들으십니다. 작은 기도도 다 들으십니다. 사랑하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말하는 게 기도고 듣는 게 말씀입니다. 기도의 응답은 하나님 말씀으로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서 기도를 구체적으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 들으시고 다 응답하십니다. 지금 바로 응답을 안 해주셔도 시간이 흐른 후 응답을 반드시 해주십니다.

지금도 이 세상에서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디에 어떻게 기도합니까? 주님은 아버지 하나님한테 기도한다고, 그러니 너희도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여기서의 하나님은 Almighty God을 말합니다. "Almighty"란 하늘에 계시다는 것입니다.

사 55: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55: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하나님은 다른 생각을 갖고 계십니다. 그 분 안에 만 가지 길이 있습니다. 사도가 될 수 있었던 제일 조건은 부활을 믿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이심을 네가 믿느냐? 부활하신 주를 만나기 전의 베드로와 그 후의 베드로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사도행전 4장에서 대제사장을 대하는 그 담대한 증언을 보십시오. 이 세계를 지으시고 보존하시며 우리를 죽이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죽은 자를 살리실 수 있는 하나님이시라는 부활의 신앙이 그 안에 들어온 것입니다.

'기도할 수 있는데 뭘 걱정하나요'라는 유명한 광고판도 있지 않습니까? 이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홀로인 것이 고독하지 않습니다. 하늘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이 세계를 지으신 하나님, 이 세계를 다 보존하시고 역사하시고 주관하시는, 절대 주권을 가지고 계시는 그분이 계십니다. 우리는 거기에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기도를 사랑의 하나님께서 다 들으십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다 들으시고 우리 기도의 모든 것에 다 응답하십니다.
기도할 때 만 가지의 기도의 말들이 있다 할지라도, 주님의 가르침은 이렇게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첫 번째로 붙들어야 할 것은 거룩입니다. 거룩이란 무엇입니까?

사 55: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55: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너희와 전적으로 다른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전지하고 전능하신 Almighty God입니다. 너희는 여기 있고 그분은 저기 계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경배와 찬양을 받으시는 분입니다. 이 흑암의 세계에서 지혜롭다 하는 사람은 바로 묻습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이에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라고 단언합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 찬양하고 경배해야 합니까? 성경에 찾아보면 수많은 구절들이 있습니다. 이 세계를 지으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거룩은 영광이라 하는데, 영광스러운 분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왜 그분에게 경배와 찬양을 돌려야 하느냐? 로마서 1장에서도 말하기를, 그분이 이 세계를 다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소유로 말하면 다 "내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하시는 분이시며, 보존하시는 이십니다. 이 자연의 운행을 보십시오. 이 모든 것들, 억과 조만큼 많은 별들, 운행하는 모든 것들이 다 하나도 어긋남 없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사도는 로마서에서 말합니다. '너희가 머리로 생각해보라. 마음으로 생각해보라. 네 안과 네 밖에서 하나님 살아계심을 스스로 증거하고 있지 않느냐? 그런데 너희는 하나님을 왜 경배하고 찬양하지 않느냐? 그리고 왜 다른 것을 신으로 섬기느냐? 그러므로 말미암아 죄를 쌓아가고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그 죄의 결론은 뭐냐? 사형이다!'

이는 죄 아래 있는 인간 실존에 관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로마서 1장은 판결문 같은 것입니다. 제목을 붙이자면, 사형, 더 나아가 영벌Eternal Punishment입니다. 이 세계를 창조하시고 붙들고 계시는 분, 우리의 목숨을 내시고 관리하시는 생명의 주인이 계시는데, 그것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롬 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하나님을 모른다고 핑계할 수 없는 인간이, 하나님 살이 계심을 알게 끔 되어 있는 인간이 그를 영화롭게 하지 않습니다. 감사치도 않습니다. 바울은 이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깊어지면 하나님 대신 맘몬이든 바알이든 우상을 섬기고 순리를 역리로 쓰며 죄를 쌓아갑니다. 우리 삶의 모든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께 감사하고 살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입니다. '그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무엇을 하든지 그분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라!' 이 기준을 가지고 있으면 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의 목적입니다. 우리가 왜 사느냐는 의미를 찾지 못할 때 허무에 빠집니다. 그러나 말씀에는 분명히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이름을 거룩히 여김 받게 하시려고 산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 성경을 아는 사람 안에는 방황이 없습니다. 허무가 없습니다. 말씀을 듣는 순간부터 모든 우울이 다 사라집니다. 허무가 사라집니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살아갑니까? 돈은 인간을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인간 영혼의 수준이 그렇게 얕지 않습니다. 시편의 기자는 "주님은 나의 만족이시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만족케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시42:1]" 우리 안에 이 갈증과 바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오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약은 하나님의 임재Presence를 말해줍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임재를 말하는 것입니다. 구약은 궁극적으로 성막과 성전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오시는 하나님. 임재하시는 하나님. 그리스도께서는 46년된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의 임재가 충만하셨던 그리스도, 이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크나큰 축복입니다.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 하시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저기 초월해 계실 뿐만 아니라 내재, 우리 안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 가호하시는 하나님, 기르시는 하나님, 붙드시는 하나님을 두고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고전12:2]"

위대하신 주를 영화롭게 하고 감사하며 사는 것이 우리가 마땅히 해야 될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 만족된 우리 안에 또 다른 갈증thirsty이 있습니다.

마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가난하고 온유하며 의에 주리고 목마른 심령, 이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갈증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노래했듯이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는 이런 세상을, 굶주린 자가 간절히 먹을 것을 그리워하듯이 그리워하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사는 목적, 이 두 가지를 주님께서 깨끗이 정리해 주셨습니다. "1)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2)나라가 임하시오며" 이 푯대를 놓치면 방황합니다. 이것이 희미해지면 인생이 흔들리고 파선합니다. 성경의 모든 결론은 "Thy Kingdom come"입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지고 피 흘리시고 찢어지심도 이 하나의 목표에 수렴되는 것입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역사가 아무리 요동치고 수많은 악이 횡행해도 주의 나라는 옵니다. "이루어지이다" 이것은 역사에 대한 확신입니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이 온다는 것입니다. '이 확실한 역사에 대한 해석을 가지고 너희는 그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라. 그 나라를 위해서 살라.' 주님께서는 그 뒤에 다시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마 6: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주의 나라는 공의가 강 같이 흐르는 세계입니다. 인간이 만들었고 만들고자 하는 수많은 kingdom으로 이것을 유추하지 마십시오. 이는 전혀 다른 단어입니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세계가 이 땅에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 이것이 2020년도를 살아가는 우리의 목적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또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삶의 목적과 푯대를 붙들고 늘 기도하며 이 세계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