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성수의 예배와 사랑과 섬김에 전력하는 귀중한 삶” 김명혁 목사님 설교 (1)

“주일 성수의 예배와 사랑과 섬김에 전력하는 귀중한 삶” 광주보배교회(22.8.28)

마 12:8, 막 10:45, 요 13: 14, 요 4:23, 롬 12:1,2, 엡 5: 1,2

죄와 허물로 가득한 부족한 사람을 불러주어서 3년 전인 2019년 5월 19일 주일 여기 전라남도 광주 보배교회에 처음으로 와서 “기도와 말씀에 전력하는 삶”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년 전인 2020년 5월 17일 주일 여기 두 번째로 와서 “사랑과 섬김에 전력하는 삶” 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했고, 1년 전인 2021년 8월8일 여기 세 번째로 와서 “하늘을 바라보며 천국 소망을 지니고 살아가는 삶”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금년 2022년 3월 20일 주일 여기 네 번째로 와서 “내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 여덟 가지”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는데, 오늘 2022년 8월 28일 여기 다섯 번째로 와서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 드리면서 설교를 할 수 있게 되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저를 불러 주신 저의 제자 장석진 목사님과 광주 보배교회 성도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무슨 제목으로 설교를 하면 좋겠냐고 장석진 목사님에게 물었더니 “예배와 사랑과 사명”에 대한 설교를 하면 좋겠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주일 성수의 예배와 사랑과 섬김에 전력하는 귀중한 삶”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사실 저는 2년전인 2020년 5월 17일 주일 여기 두 번째로 와서 “사랑과 섬김에 전력하는 삶” 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했는데 그 때 한 설교를 참고하면서 “주일 성수의 예배와 사랑과 섬김에 전력하는 귀중한 삶”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먼저 “주일 성수의 예배 드림에 전력하는 귀중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이 하나님께 “예배의 제사”를 정성껏 드리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오래 전에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시는 목적이 하나님을 섬기는데 즉 하나님께 “예배의 제사”를 드리는데 있다고 출 3장부터 10장까지 10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이 산에서 하나님을 삼기리니”(출 3:12).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놓아서 나를 섬기게 하라”(출 4:22,23).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출 5:1).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 7:16).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 8:1).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 8:20).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 9:1).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 9:13).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 10:3). “우리가 그 중에서 취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길 것임이며 또 우리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어떤 것으로 여호와를 섬길는지 알지 못함이니이다”(출 10:26). 출애굽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독립하여 자유를 누리며 잘 사는데 있다기 보다는 하나님께 “예배의 제사”를 계속해서 정성껏 드리는데 있다고 거듭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장 1절에서 구원의 은혜와 축복을 받은 신자들이 제일 먼저 하여야 할 일이 “예배의 제사”를 하나님께 정성껏 드리는데 있다고 분명하게 지적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청교도들과 한국교회의 신앙의 선배님들은 “주일 성수와 예배의 신앙”을 가장 귀중한 신앙으로 여기며 “주일 성수와 예배”를 철저하게 수행했는데, 오늘의 한국교회는 “주일 성수와 예배의 신앙”을 거의 포기한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교회의 목회자들과 신자들이 주일날에 예배가 아닌 개인적인 사적인 일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매식도 여행도 오락도 공부도 아무 거리낌 없이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일 저녁 예배를 폐지한 교회들이 너무 많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의 일부 목회자들과 교수들은 철저한 “주일 성수와 예배의 신앙”을 “율법주의로” 간주하기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너무너무 부끄럽고 기가 막히는 일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주일 성수와 예배 드림”을 거의 포기한 상태가 되었는데 너무너무 부끄럽고 너무너무 기가 막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배와 제사”의 중심은 구약시대에는 “안식일 성수”의 예배와 제사였고 신약시대에는 “주일 성수”의 예배와 제사였습니다. 구약 성경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분명하고 강하게 명령했습니다. “인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출 20:8). “안식일을 더럽히는 자는 죽일찌니”(출 31:14, 35:2, 민 15:35). 성부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명령하신 이유와 목적은 인간을 복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창 2:3).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 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 20:10,11).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신 5:10). “안식일 성수”의 명령은 구약시대에 그친 것이 아니고 신약시대에 이어졌습니다. 구약의 안식일 제도는 신약의 주일을 준비하는 예표였습니다. 구약의 안식일 제도는 구약 시대에 잠깐 동안 주어진 제도가 아니라 “대대로” 지킬 “영원한” 언약이고 표징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제 칠일에 쉬어 평안하였음이니라 하라”(출 31:13,16,17).

성자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시고 안식일의 완성자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마 12:8). 성자 예수님께서는 안식 후 첫날인 주일 새벽에 부활하셨고 그리고 첫 주일 이른 새벽에 사랑하는 제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위로와 기쁨과 함께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저녁 즉 첫 주일 저녁에 부활의 주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 열 명에게 나타나셔서 위로와 기쁨과 사명과 함께 성령을 부여하셨습니다. 한 주간이 지난 둘째 주일 저녁에는 도마를 포함한 열 한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 20:27) 라고 말씀하셨고 성령이 강림하신 날도 예루살렘 교회가 탄생한 날도 안식일 다음 날인 주일날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안식 후 첫날인 주일날 함께 모인 성도들과 종일 아니 밤중까지 성찬식을 거행하고 말씀을 전하며 예배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 쌔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행 20:7). 부활의 주님께서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던 사도 요한에게 나타나신 날도 “주의 날” 곧 주일이었습니다.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계 1:10).

신약 성경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신약의 주일”은 영원한 “천국의 안식일”을 예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천국의 인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히 4:1,11). 앞으로 하늘에서는 목회와 구제와 봉사와 전도와 선교 등 중요한 일들은 모두 사라지고 맙니다. 구원함을 받은 지상의 모든 사람들이 천사들과 함께 그리고 생물들과 함께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돌리는 “천국의 예배”만이 영원토록 계속하게 된다고 사도 요한이 증언했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찌어다 네 생물이 가로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계 5:13,14).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찌로다 아멘 하더라”(계 7:9-12). 이것이 하늘에서 드려지는 영원한 “안식일 예배” 또는 영원한 “주일 예배”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