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성수의 예배와 사랑과 섬김에 전력하는 귀중한 삶” 김명혁 목사님 설교 (3)

그러면 이제부터 “사랑과 섬김에 전력하는 귀중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성자 예수님의 삶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정성껏 드리는 예배와 함께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사는 것 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사랑과 섬김”의 귀중성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 10:11).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그리고 주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은 “사랑과 섬김”을 실천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4,15).

성자 예수님께서는 이웃뿐 아니라 원수들에게 까지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야 한다고 다음과 같이 아주 길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3-48).

사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저주와 심판을 받아 마땅한 이 세상의 모든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아주 오래 전부터 철저하게 펴셨다고 생각합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섬김”의 모습을 아주 오래 전에 길고 상세하게 표현하고 또 표현했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저주와 심판을 받아 마땅한 이 세상의 모든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구세주로 성자 예수님을 천사의 모습으로 보내시려고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극심하게 저주를 받아 마땅한 죄인 중의 괴수의 모습으로 구세주로 보내시려고 하시는 성부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과 섬김”의 모습을 아주 길고 아주 상세하게 묘사했습니다.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 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사 53:1-8,12). 저주와 심판을 받아 마땅한 이 세상의 모든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베푸시려고 하시는 성부 하나님의 극심한 희생적인 죽음의 “사랑과 섬김”의 모습을 인간의 글이나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었습니다. 아마 선지자 이사야는 성령님의 영감을 받아 성부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과 섬김”의 예언의 글들을 쓰면서 엎드려져서 울고 또 울고 또 울었을 것입니다.

성자 예수님의 “사랑과 섬김”을 최고로 받은 사도 요한은 나중에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과 섬김”의 모습들을 일일이 섬세하게 서술하면서 울고 또 울고 또 울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 3:16-18).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가로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 13:1,4-6,14,15,34,35).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1-3). 사도 요한이 바라보고 또 바라본 성자 예수님의 모습과 듣고 또 들은 성자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는 “사랑과 섬김”이 없는 모습과 말씀은 하나도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사도 요한은 성자 예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신” 모습들을 묘사하고 “사랑으로 충만하신” 말씀들을 기록하면서 울고 또 울고 또 울었을 것입니다.

 

순수한 “사랑과 섬김”이 나타나는 곳에는 감동의 눈물이 흐르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죄와 허물이 많은 우리 인간사회 안에서도 조그만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펼 때에 감동의 눈물이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인데 강변교회와 중국 연변 지역과 모슬렘 지역의 어린이들에게 조그마한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곤 했는데 감동의 눈물이 나타나는 것을 너무 많이 보곤 했습니다. 저들이 저에게 보낸 감동의 편지들이 너무너무 많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성자 예수님의 삶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사랑과 섬김”의 삶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과 섬김”의 삶보다 귀중하고 아름다운 삶은 세상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영국의 대표적인 복음주의 신학자요 설교자인 존 스토트 박사님은 예수님의 삶을 가장 정확하고 올바로 묘사하는 말씀이 막 10:45 이라고 하셨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세상에 오셔서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사시다가 죽으셨는데 주님을 믿고 따르는 제지된 우리 죄인들도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살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산을 옮길 만한 믿음도 귀중하고 천사의 말도 귀중하고 예언의 능도 귀중하고 구제도 귀중하지만 “사랑”이 없는 믿음과 천사의 말과 예언의 능과 구제는 아무 소용이 없다고 단언을 했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13). 그리고 “섬김”의 귀중성을 강조했습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 12:11).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롬 1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