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에 나타난 신앙의 선배님들은 거의 모두 성자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살았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와 신자들은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사는데 제일 많은 정성을 쏟아 바쳤습니다. 욥바 복음화의 주역이 된 도르가도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사는데 제일 많은 정성을 쏟아 바쳤습니다. 가이사랴 복음화의 주역이 된 고넬료도 “사랑과 섬김과 구제”의 삶을 사는데 제일 많은 정성을 쏟아 바쳤습니다. 안디옥 복음화의 주역이 된 예루살렘에서 온 피난민들과 예루살렘교회가 파송한 바나바야말로 무엇보다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사는 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빌립보 복음화의 주역이 된 루디아도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편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사랑과 섬김”의 목회자인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의 “사랑과 섬김”의 삶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사람이었는데 무엇보다 “사랑과 섬김”의 사람이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믿음과 소망은 “사랑과 섬김”으로 나타났습니다. 그의 믿음과 소망은 나환자 “사랑과 섬김”으로 그리고 원수 “사랑과 섬김”으로 나타났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사랑과 섬김”의 극치는 1948년 10월 19일 여수 순천 반란 사건 때 나타나 보였습니다. 사랑하던 두 아들 동인군과 동신군이 공산 폭도들에게 붙잡혀 순천 경찰서 뒷 마당에서 총살을 당했습니다. 10월25일 반란군에 의해 두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손양원 목사님 내외는 엄청난 충격에 쌓여 비통해 했습니다. 반란 사건이 진압되고 두 아들을 죽인 안재선이 잡혔다는 소식을 들은 손양원 목사님은 밤을 새워 통곡하며 기도하고 교회를 나오면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저 영혼이 불쌍해서 어쩌나, 내 아들들은 죽어서 천국에 갔지만, 안재선은 죽으면 지옥 갈텐데, 저 영혼이 불쌍해서 어쩌나.” “그를 살려야 한다. 그를 용서해야 한다. 그를 사랑해야 한다.” 두 아들을 죽인 안재선이 체포되어 총살을 당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손양원 목사님은 계엄 사령관에게 딸을 보내어 그를 사면할 것을 간청했습니다. 그를 양자로 삼아 교육시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안 가겠다고 반항하며 대드는 딸 동희 양을 설득하여 “용서와 사랑”의 메시지를 전달하게 했습니다. 안 가겠다고 떼를 쓰던 딸은 결국 아버지의 “용서와 사랑”의 메시지를 국군 심문자에게 그대로 전하므로 처형되기 10여분 전에 원수를 살려냈습니다. 동희양은 취조 군인에게 달려가서 이렇게 아버지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아버지가 두 오빠를 죽인 자를 잡았거든 매 한 대도 때리지 말고, 죽이지도 말라 하셨어요. 그를 구해 아들 삼겠다고요. 성경말씀에 원수를 사랑하라 했기 때문이래요.” 딸은 숨도 쉬지 않고 단숨에 말을 토해 놓고는 책상에 엎드려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동희양의 말이 끝나고 동희양이 울음을 터뜨리자 방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충격을 받은 듯했습니다. 취조를 하던 군인은 입에 물고 있던 담배가 떨어진 줄도 모르고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으며 “위대하시다, 위대하시다” 라고 감탄의 소리를 토해 냈습니다. 안재선까지도 고개를 숙인 채 흐느껴 울고 있었습니다. “사랑의 원자탄”이 떨어진 장면이었습니다. 안재선은 살아났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그를 자기의 양 아들로 삼아 부산 고려 성경 고등학교에 보냈습니다. 안재선은 완전히 변화된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결혼하여 4남매를 두었는데 장남은 나중에 목사가 되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뿐만은 아니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도 장기려 박사님도 자기 자신의 평안과 부귀와 영화를 다 포기하고 3무 4무 5무의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과 청빈”의 삶을 살면서 불우하고 불쌍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살았습니다. 한국교회 선배님들인 길선주 목사님과 이기풍 목사님과 최봉석 목사님과 이성봉 목사님들도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기보다는 불우하고 불쌍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과 청빈”의 삶과 함께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살았습니다. “사랑과 섬김”의 삶보다 더 귀중하고 더 아름답고 더 축복된 삶은 세상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기적이고 정욕적이고 비판적이고 배타적이고 위선적이고 독선적이고 게으르고 나태한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이지만 “사랑과 섬김”의 부스러기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하면서 아프리카로 방글라데시로 아프가니스탄으로 파키스탄으로 중국의 연변 지역으로 때로는 일본으로 북한으로 달려 다니면서 불쌍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려고 애를 쓰곤 했습니다. 저는 지난 22년 동안 중국 연변 지역의 불우한 조선족 어린이들 150여 명에게 “사랑과 도움과 섬김”의 손길을 펴면서 돌아보고 있는데 그들 중의 대부분은 고아들이고 상당수의 어린이들의 어머니는 북으로 잡혀갔습니다. 저는 지난 22여 년 동안 거의 매년 연변 지역을 방문하며 어린 학생들과 저들을 관리하는 지역 회장들을 만나며 “사랑과 위로와 도움과 섬김과 격려”의 손길을 펴고 있는데 그 동안 설교한 일도 없고 전도한 일도 없지만 순수한 “사랑과 구제와 섬김”의 손길을 폈기 때문에 수 많은 어린이들과 학생들이 너무너무 고마워하면서 지역의 교회에 다니며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고 지역 회장들의 입에서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 라는 고백들이 흘러나오게 되었습니다. “사랑과 구제와 섬김”이 얼마나 귀중하고 아름다운 일인지 모릅니다. 연변 지역의 불우한 조선족 어린이들이 저에게 아주 많은 감사의 글들을 써서 보냈습니다.
오늘의 한국과 세계에 필요한 것은 유창한 설교보다는 심오한 신학 강의 보다는 놀라운 이적을 나타내 보이는 것보다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랑과 섬김”의 삶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다음과 같은 말을 자주 합니다. “설교는 은이고 신학은 동이로 이적은 철이고 사랑은 금이다.” 오래 전에 제가 “사랑하고 싶어라” 라는 제목의 글을 쓴 일이 있는데 그 글을 인용함으로 오늘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사랑하고 싶어라. 나는 요사이 주님을 생각하면 가슴에 눈물이 흐른다. 한 평생 나를 향하신 주님의 생각과 사랑이 어찌 그리 크고 어찌 그리 많은지! 실로 모래알보다 더 많은 주님의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이 나의 가슴에 눈물을 자아낸다. 사랑하고 싶어라. 주님을 사랑하고 싶어라. 나의 맘 나의 몸 나의 정성 다 쏟아 주님을 사랑하고 싶어라. 나는 요사이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에 눈물이 흐른다. 어린이들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너무너무 귀엽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성도들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너무너무 예쁘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이 세상 곳곳에 흩어져 사는 여러 종류의 불우한 사람들을 만날 때도 비슷한 느낌을 가진다. 저들의 얼굴과 마음과 영혼 속에 창조주 하나님께서 심어놓으신 고귀한 인성과 신성의 흔적을 보기 때문이다. 저들을 모두 사랑하고 싶어라. 모슬렘도 공산주의자도 상관이 없다. 저들은 모슬렘이나 공산주의 라는 불행한 유산에 쌓여있는 가련한 영혼들일 따름이다. 사랑하고 싶어라. 사람들을 사랑하고 싶어라. 나의 맘 나의 몸 나의 정성 다 쏟아 사람들을 사랑하고 싶어라(2007년 1월 3일 아침 교회로 운전하며 오는 차 속에서 쓴 글).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다 네 몸을 아끼고 사랑하듯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라”(찬송가 369,218)를 함께 부르시겠습니다.